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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옥관자
    ♣ LHS-music 2020. 12. 10.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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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玉貫子 이야기 

     

    '로펌'이라는 게 없었던 조선시대에는 고관대작을 지내다 퇴임하고 나면 고향으로 돌아가 조용하게 사는 경우가 많았다. 그 고독을 어떻게 견디었을까? 무엇보다도 같은 눈높이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었을 텐데 말이다.

    좌의정까지 지낸 낙동(洛東)대감 류후조(1798~1875). 대원군이 정권을 잡으면서 탕평책으로 그동안 소외되었던 영남 남인을 등용한 대표적 사례이다. 대원군이 전국을 방랑하던 시절, 상주의 낙동강변에 강직한 선비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류후조를 찾아갔다. 류후조는 손님에게 밥상을 차리기도 어려울 정도로 가난하게 살았는데, 그래도 손님 대접을 해야 하겠기에 '백비탕(白沸湯)'을 끓여 대원군에게 대접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백비탕은 찬물을 끓여서 대접에 담아 내놓는 탕(湯)이다. '청빈'의 상징이다.

     
    옥관자


    류후조는 퇴임 후 고향인 상주에 돌아와서 낙동강 지류의 동네 나루터에 나가 강변을 바라보며 자주 시간을 보냈던 모양이다. 어느 날 신임 사또가 부임하면서 나룻배를 타고 오게 되었다. 사또를 모시고 오던 수행원들은 어떤 노인네가 나루터에서 배회하니까 동네의 보통 노인으로 여길 수밖에. 사또가 배에서 내릴 때 발이 물에 닿지 않도록 하기 위해 류후조로 하여금 사또를 등에 업도록 하였다. 아무 말 없이 낙동대감은 시키는 대로 신임 사또를 등에 업었다. 그런데 사또가 등에 업혀서 보니까 이 노인네가 머리 뒤에 옥관자(玉貫子)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관자(貫子)는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감싸게 해주는 망건의 끈을 잡아매는 고리를 가리킨다. 품계에 따라 재료가 달라진다. 1품(品)은 무늬가 없는 조그만 옥관자를 사용하였고, 2품은 금으로 만든 금관자(金貫子), 3품은 소나무나 학을 조각한 큼지막한 옥관자를 썼다. 사또가 등에 업혀가면서 보니까 이 노인네는 1품이 착용하는 무늬 없는 옥관자를 착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또는 깜짝 놀랐다.

    "대감 어른을 몰라 뵙고 이거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퇴임한  전 선관위원장이 로펌에 가지 않고 부인이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잡일을 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혹시나 성질 급한 어떤 손님으로부터 "물건 좀 빨리 갖다 줘야 할 것 아니요?"하는 꾸지람을 들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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